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생생히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정치 권력과 범죄 조직 간의 유착, 검찰과 조폭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 등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부패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를 ‘암흑기 정치와 범죄 유착’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하며, 그 안에 숨겨진 시대적 메시지를 조명합니다.
공권력과 야합의 민낯
범죄와의 전쟁에서 주인공 최익현은 단순한 밀수 혐의로 시작해 조직폭력배와 손을 잡고 부와 권력을 쌓아가며, 점차 권력과 범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인맥을 통해 검찰, 경찰, 정치권까지 연결되는 구조는 19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돈’이 어떻게 뒤얽혀 있었는지를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익현은 국가 공무원이지만, 불법 밀수로 시작된 범죄 행위를 조직폭력배와 결탁하여 정당화하고, 이를 권력과의 야합으로 확대시킵니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시 공권력이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고, 범죄와 타협했는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재현에 가깝습니다. 공권력이 스스로 정의를 포기하고 유착과 눈감기에 더 집중할 때, 사회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타락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이 장면들은 단지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상징합니다. 이로써 영화는 ‘법의 탈을 쓴 불법’이라는 모순을 사회 전반에 투영합니다.
검사와 조폭의 경계선
검찰 권력은 영화 내내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합니다. 특히 조범석 검사와 최익현의 관계는 단순한 검거와 피의자의 관계를 넘어서, ‘권력의 줄서기’라는 테마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익현이 검사에게 선물을 보내고, 사석에서 함께 어울리는 장면들은 당시 검사와 조폭, 혹은 재계 인사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검찰은 법의 수호자라는 본래 역할에서 벗어나,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는 데 필요한 통로이자 수단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묘사는 현실에서도 실제 있었던 ‘검사 사조직’ 혹은 ‘스폰서 검사’ 논란 등을 연상케 합니다. 영화는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법의 집행이 어떻게 유전무죄·무전유죄로 왜곡되는지를 비판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익현이 권력의 버림을 받으면서 무너지는 모습은 정치적 관계가 얼마나 냉정하고 일방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검찰은 정의의 이름으로 그를 내쳤지만, 그동안 그와 함께 야합했던 모든 정황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권력을 보전하려는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검사와 조폭의 구분이 모호해진 시대, 영화는 ‘정의의 타락’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부산 조직폭력의 역사성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1980~90년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실존했던 조직폭력의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기록입니다. 당시 부산은 항구 도시 특성상 밀수, 밀거래, 도박, 유흥업소 등 조직폭력배의 주요 활동 무대였고, 영화는 이들의 실상과 권력 유착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냅니다. 영화 속 최익현과 최형배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시대와 공간이 만든 인물들입니다. 특히, 익현이 사업 확장을 위해 정치권과 손을 잡고, 형배는 물리적 폭력으로 세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당시 조직폭력의 실체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러한 배경은 단지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비공식적 권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조직폭력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비공식 권력이 작동한 결과였으며, 공권력의 유착 속에서 보호받았다는 점에서 사회 구조의 이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영화는 이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리얼리즘으로 풀어내며, 지역성과 시대성이 만들어낸 조직폭력의 역사성을 설득력 있게 전개합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시대극입니다. 정치와 범죄, 공권력과 사적 이익이 얽힌 유착의 현실은 여전히 유효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권력의 민낯과 부패의 본질을 되새겨보며, 오늘의 정의가 과거와 어떻게 다르게 서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