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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도시 붕괴의 사회학)

by 여나09 2025. 5. 22.

부산행 (도시 붕괴의 사회학)
부산행 (도시 붕괴의 사회학)

영화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이지만, 그 본질은 현대 도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폭로하는 사회학적 텍스트입니다. 도심의 붕괴, 통제력 상실, 시민 간 갈등 등은 단지 공포를 자아내는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그 속의 인간 군상들을 냉정하게 되짚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본 글에서는 부산행을 ‘도시 붕괴의 사회학’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하며, 그 속에 담긴 사회 시스템의 균열과 인간 심리를 조명합니다.

국가 부재의 공포감

부산행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이러스 확산 초기부터 드러나는 국가의 부재입니다. 감염 사태가 급속도로 번지는데도, 정부는 정확한 정보 제공이나 효과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을 더 부추깁니다. 방송 매체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만을 반복하고, 시민은 체감하는 위기와 공식 발표 사이에서 신뢰를 잃습니다. 이는 도시 시스템의 핵심인 ‘공공성’과 ‘통제력’이 사라졌을 때, 사회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위기관리 시스템이지만, 부산행은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감과 불신, 그리고 생존 본능에 의한 행동 양상을 집요하게 포착합니다. 국가는 정보를 통제하면서도 실질적인 보호는 제공하지 않으며, 이 공백은 도시를 한순간에 무법지대로 전락시킵니다. 이러한 묘사는 실제 사회적 재난 시 반복되는 정부의 무능과 대중의 분노,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도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기심과 연대의 교차로

도시가 붕괴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선택은 극명히 갈립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용석과 석우입니다. 초반의 석우는 자신의 이익과 딸만을 고려하는 전형적인 도시인으로 묘사됩니다. 반면, 상화와 성경은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적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대비는 재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도시인의 이기심과 연대 본능의 충돌을 상징합니다. 도시라는 공간은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고립된 개인으로 존재하게 되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고,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기심이 더욱 극대화됩니다. 영화에서 중년의 회사 간부는 감염자들과 비감염자를 무리하게 구분하며,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려 합니다. 이 장면은 재난이 단지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인간성의 시험대라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문을 열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상화의 희생은 그 상징이며, 이러한 선택은 도시가 단순히 기능적 공간을 넘어 도덕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도시 붕괴는 필연적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인간성만은 지켜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폐쇄 공간이 만든 심리 진화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은 부산행에서 중요한 사회적 실험실로 작동합니다. 단절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판단하며, 상황에 따라 심리적으로 급속히 변화합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가 감염되었는가’에 대한 불신과 공포, 그리고 이로 인한 심리적 경계 짓기입니다. 칸마다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구분되며, 물리적 격리와 함께 심리적 배제도 함께 이루어집니다. 특정 인물은 감염자일 가능성만으로도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이는 현실 속 혐오와 낙인을 그대로 반영한 구조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구조는 팬데믹이나 사회 재난에서 자주 관찰되며, 부산행은 이를 상징적으로 시각화합니다. 이 폐쇄된 공간은 동시에 개인의 심리 변화도 극대화시킵니다. 초반의 이기적인 석우는 딸 수안과의 관계, 상화의 희생 등을 통해 점차 공동체의 가치를 깨닫고, 마침내 자신을 희생하게 됩니다. 공간의 제약은 역설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게 만들며,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부산행의 기차는 단순한 탈출 수단이 아니라, ‘사회’라는 이름의 축소판이자, 인간 심리의 진화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부산행은 좀비라는 외형적 장르를 통해 도시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예리하게 분석한 작품입니다. 재난은 사회적 거울이며, 도시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지금 우리가 속한 도시 사회를 돌아보며, 연대와 책임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