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는 한 편의 시적인 에로티시즘이자, 사회적 계급과 젠더 권력의 해체를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치밀한 플롯과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극찬을 받은 이 영화는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관계의 위선, 지배, 그리고 해방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벗겨지는 욕망의 계단’이라는 표현은 그 상징성과 서사를 동시에 함축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욕망이 어떻게 서서히 드러나고, 결국 누가 벗기고 누가 벗겨지는지를 탐색한다.
첫 계단, 숙희의 눈과 하녀의 욕망
숙희는 처음에는 명백히 ‘하녀’라는 계급적 위치에서 출발한다. 후지와라 백작의 지시로 히데코 아가씨를 속이고,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 단순한 역할 이상을 감지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녀는 점차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의 경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녀라는 신분은 그녀에게 특정한 태도와 언어를 요구하지만, 히데코의 옷을 입히고 목욕을 시키는 과정에서 그녀의 눈빛은 변화한다. 복종과 봉사라는 외피 아래 자리 잡은 섬세한 감정과 알 수 없는 이끌림이 화면 위에 스며든다. 욕망은 처음부터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한 손길’과 ‘시선의 머뭇거림’ 속에서 기어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숙희의 욕망은 지배와 억압의 도구로만 보이던 육체적 행위를 넘어선다. 그녀는 점차 히데코를 통해 스스로를 해석하고, 사랑이란 이름의 주체로 자리 잡는다. 욕망이란 벗겨내는 행위지만, 동시에 ‘자신을 입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숙희는 자신이 연기하던 가면을 벗기고, 진짜 감정을 입기 시작한다.
두 번째 계단, 히데코의 침묵과 권력의 탈의
히데코는 외형적으로는 유약한 상류 여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학습된 연기와 절제된 저항이 숨어 있다. 그녀는 외삼촌 고즈키의 저택에서 음란한 책을 낭독하는 존재로 살아왔으며, 육체가 아닌 목소리로 소비되어왔다. 그녀의 몸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대상이었다. 히데코가 계단 위에 앉아 낭독할 때마다, 그녀는 욕망의 수단이자 객체로 전락한다. 하지만 숙희와의 만남은 그 침묵의 균열을 만든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경계 속에서 시작된 관계는, 점차 권력의 전복으로 이어진다. 히데코가 벗겨지는 순간은 단순한 노출이 아닌 자신이 조작당해왔던 세계로부터의 일탈이다. 숙희가 그녀를 씻기고 입히며 생기는 관계의 균열은 히데코의 욕망이 단순히 성적 자극에서 비롯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무너지는 권력 구조를 욕망한다. 후지와라 백작의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것은, 히데코가 더 이상 그 구조 안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이제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이때 벗겨지는 것은 단지 겉옷이 아니라, 여성 억압의 틀이다.
마지막 계단, 공모와 해방의 정사
「아가씨」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욕망이 더 이상 억압의 수단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숙희와 히데코는 결국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며, 공모자가 된다. 이 공모는 단지 감정적 연대가 아닌, 권력 구조를 파괴하기 위한 전략적 연합이다. 이제 이들의 욕망은 남성 중심 권력에 저항하는 도구로 확장된다. 정사의 장면들은 감각적으로 표현되지만, 그것이 단지 자극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이들은 서로를 벗기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자신을 입혀준다. 그 감정은 타락한 욕망의 해방이 아니라, 순수한 이해와 평등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때부터 ‘벗겨지는 욕망의 계단’은 지배와 복종의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나란히 걷는 수평선으로 전환된다. 후지와라 백작과 고즈키는 이 계단을 끝까지 오르지 못한다. 그들은 욕망을 도구로 사용했지만, 결국 그 도구에 배신당한다. 반면 숙희와 히데코는 스스로 욕망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해방을 이룬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진짜 벗겨야 할 것은 육체가 아니라 위선이며, 진짜 욕망은 타인을 지배하지 않는다.’
「아가씨」는 욕망과 계급, 젠더, 권력의 문제를 치밀하게 해체하며, 한 편의 아름다운 반란을 완성한다. ‘벗겨지는 욕망의 계단’은 결국 지배의 구조가 무너지고, 진심과 해방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여정을 뜻한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수많은 상징과 시선 속에 담긴 욕망의 언어를 해석하며 감상해보길 권한다. 진짜 벗겨지는 것은 바로 우리가 믿어온 세계의 허상일지도 모른다.